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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by sill室 2021. 3. 23.

위스키에 관한 책은 주로 위스키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위스키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 한번 마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 책은 1990년대 말 작가가 스코틀랜드 아일라섬과 아일랜드로 위스키 여행을 다녀온 후 쓴 두 편의 글을 엮은 책입니다. 책에 삽입된 사진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내인 무라카미 요오코가 촬영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으로 시작하는 책 머리말의 마지막 문단은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99년 12월 일본에서 출판된 책의 원 제목은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ーであったなら)입니다. “이런 저런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국어판에서는 제목을 달리했다는 옮긴이의 설명처럼 한국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개정 출판된 이 책의 제목은 다시 원 제목을 살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이 되었습니다.

분량이 짧고 잘 읽히기 때문에 한 번 펼치면(위스키가 당겨 중간에 잠시 멈출수도 있겠지만)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부분이 좋지만, 위스키 바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흥미있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일라 섬에서 보모어와 라프로익 증류소를 들르게 됩니다. 작가가 증류소를 방문했을 1990년 말에는 보모어 증류소는 이미 Beam Suntory에 속한 증류소였으며, 이곳에서 증류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Jim McEwan을 만나 위스키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같이 공 굴리기(?)도하고, 귀국 시에는 Jim McEwan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직접 고른 보모어 21년 위스키도 선물합니다. 

작가가 라프로익 증류소를 방문했을 때의 매니저는 Ian Henderson이었습니다. 1994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라프로익 증류소에 방문했을 때 증류소 소개 및 위스키 제조과정을 설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증류소 방문 이후 크게 감명한 왕세자는 라프로익 증류소에 로열 워런트를 수여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위스키 책들과는 다르게 이론적인 부분을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따뜻한 글을 통해 마음으로 위스키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위스키뿐만 아니라 여행의 소중함도 일깨워 줍니다.

작가는 도쿄의 바에서 싱글 몰트를 마실 때면 머리속으로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 풍경을, 아이리시 위스키를 마실 때면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들렀던 여러 펍들을 떠올렸습니다. 꼭 그 술의 산지가 아닐지라도 저 역시 여행에서 마셨던 술을 다시 마실 때면 그곳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에 지난 추억을 돌이키며 위스키 한 잔 생각나게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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