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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위스키의 지구사 - 케빈 R. 코사르 지음 / 조은경 옮김 / 주영하 감수

by sill室 2020. 8. 2.

 

 

 

책의 저자 케빈 R. 코사르(Kevin R. Kosar)는 AlcoholReview.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잡지와 신문에 주류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위스키가 단순한 술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스키 관련 서적은 음용법을 알려주는 안내서이거나 원산지별 특정 유형의 위스키에 대해 다룬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위스키 산업과 정부 사이의 관계, 세금 및 관련 정책과 그에 따른 영향, 오늘날 위스키 주요 생산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의 위스키 산업 발전 과정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위스키는 무엇이고, 언제, 누가, 왜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풀어나간다. 

 

먼저 위스키의 정의와 제조 방법, 종류를 소개한다. 다른 위스키 관련 서적과 다를 수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빼놓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위스키를 만드는 핵심 과정인 증류의 전파 과정을 알아보는 부분이 사실상 이 책의 시작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역사의 시작이다.

 

위스키와 증류에 대한 역사는 문장 몇 개의 발췌로 대신한다.

 


어떤 책을 참고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위스키에 대한 기원을 찾아보면 대개는 적어도 2000년 전에 고대 그리스나 서아시아의 현인들이 증류 과정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지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 제도로 널리 퍼졌다. p.53


현재 연구자들은  '1753년에 <<젠틀맨스 매거진 Gentleman's Magazine에>> '위스키whiskey'라는 단어가 맨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잡지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가게를 소개하며 "저주받은 술, 위스키 120갤런(540리터)이 팔렸다"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whiskee'(1753), 'whisky'(1746), 'whiskie'(1751)라는 단어가 언급되기도 하였다. p.56


위스키는 '우스키usky'(철자를 'usquae' 또는 'husque'로 쓰기도 했다)에서 유래한 듯하다.

... 중략...

가장 먼저 문헌에 나온 단어는 '위스케 바하uisce betha'(1405)로 아일랜드인들이 '오스케바oss-keh-baw', 스코틀랜드 인들이 '오스키바하ooshkiebayha'라고 발음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p.57


최초의 위스키 제조에 대해 반박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기록은 1494년에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익스체커 롤스Exchequer Rolls(공공 세입의 징수와 배분을 담당했던 정부 부서 기록-옮긴이)에  "맥아 8볼boll(스코틀랜드 중량 단위-옮긴이)을 존 코어 수도사에게 주니 그것으로 아쿠아 바이티aquavitae(생명의 물)를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p.66


 

이어서 오늘날 위스키 대량 생산국이자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에서 위스키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를 설명한다. 캐나다와 일본에 대해서는 약간의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한 나라의 위스키 산업 발전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그 중 주요해보이는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첫번째는 위스키 증류 업자와 정부의 관계이다. 정부는 위스키 생산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사용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과세이다. 하지만 지나친 과세는 밀주의 성행과 생산자와 세금 징수원 간의 마찰만 부추겼다는 점에서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과세제도를 개편하고 위스키 생산을 합법적으로 장려함으로써 위스키 산업은 호황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변화에 대한 올바른 상황 판단이다. 1830년 Aeneas Coffey가 개발한 연속식 증류기로 인해 위스키 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연속식 증류기를 통해 만들어진 위스키를 단식 증류기에서 만든 위스키와 재조합하여 재증류주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던 스코틀랜드는 세계대전과 경기불황 속에서도 고난을 잘 극복하였다. 반면 전통을 고수하고 연속식 증류기를 통한 위스키 생산을 거부했던 아이리시 위스키 업계는 큰 난항을 겪게 된다. 물론 연속식 증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리시 위스키 업계가 힘들어진 것은 아니다. 보리 사용량 제한과 미국의 금주법 역시 아이리시 위스키 업계를 힘들게 한 원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와 같은 상황임에도 유독 아일랜드 위스키 상황이 좋지 못했던 것은 결국엔 급변하는 세계 위스키 산업 생태계에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금주법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증류소와 양조장이 문을 닫았고, 미국 음주가들의 취향이 위스키에서 진이나 보드카 같이 가벼운 풍미를 지닌 술로 대체되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 위스키가 가지고 있던 알싸하고 향이 풍부한 호밀 위스키 스타일을 버리고 가볍고 풍미가 얕은 캐나다산 위스키를 따라 하기에 이르렀다. 스카치위스키를 따라 하고 싶었지만 따라 하려야 따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방법이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미국 위스키는 본래의 강점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게 된다. 이때 오히려 전통적인 미국 위스키 풍을 고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에는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마케팅이다. 세 나라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위스키 산업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그때 당시에 가장 많이 팔리는 주류가 위스키가 아니었음에도 스코틀랜드다움(Scottishness)의 일부로 스카치위스키를 밀어주었다. 아일랜드 역시 침체된 위스키 산업을 살리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고 국외 생산 주류에 세금을 더 부가하는 식으로 아이리시 위스키를 의도적으로 살렸다. 미국은 위스키 중 버번을 미국의 산물로 지정하고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버번위스키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고급화 전략까지 더하여져 버번위스키는 세계 시장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호밀 위스키 시장에 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위스키 산업이 항상 호황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위스키 대량 소비에 따라 수반되는 사회적 문제들과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세계적 상황으로 인해 침체를 겪은 적도 있다. 하지만 세 나라에서 위스키 산업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 없이 발전할 수 있는 산업이 어디 있겠는가.

 

위스키의 지구사는 21세기 위스키 세상과, 감수자인 주영하 씨가 쓰신 한국에서의 위스키 역사 또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위스키 산업이 발전해온 길을 바탕으로 현재 위스키 산업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책을 썼는 지를 보고 책을 읽었음에도 처음에는 쉽게 와 닿지가 않았다. 다른 위스키 교양서를 보면서 이미 위스키 종류에 따른 특징이나 스펙 같은 것을 훑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읽었던 부분을 곱씹고 정리를 하면서 비로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위스키 산업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와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위스키에 대한 역사와 자세한 설명들이 들어있는 위스키 안내서는 많다. 하지만 대부분 스코틀랜드와 스카치위스키 또는 미국과 미국 위스키처럼 한 나라의 위스키 산업에 대해서 설명해둔 것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큰 틀에서 자세하면서도 재밌게 설명해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한국 위스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부분은 두고두고 읽고 싶을 정도로 특별하다. 

 

위스키 역사는 한두 페이지에 그치고, 증류소별 특징과 제품 라인업 설명의 비중이 높은(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책들임에는 틀림없다) 서적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위스키 애주가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꼭 위스키를 마셔보지 않았더라도, 위스키는 무엇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하나만으로 이 책을 집어 들 이유는 충분하다. 글을 쓰는 도중에도 위스키가 당겨 혼이 났다.

 

위스키의 지구사
국내도서
저자 : 케빈 R. 코사르(Kevin R. Kosar) / 조은경역
출판 : 휴머니스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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