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술을 잘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잘 아는 것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많다 적다를 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술을 잘 알지는 못한 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물론 술을 좋아하는 데 있어 술을 잘 알 필요는 없겠지만.
술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술이 어떤 맛을 내는지를 잘 아는 사람과 술의 제조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술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술의 역사를 꿰고 있는 사람이 술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정말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신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조차 술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그런 맛이 나는지,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과 심지어 파는 사람도 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없다는 건 미스터리다. p 19.
작가인 아담 로저스는 미국의 유명 IT, 기술 및 과학 잡지인 <와이어드>의 편집자이다. 이 책은 <와이어드>에 2011년 6월 호에 실어 미국 과학 진흥 협회(AAAS)로부터 과학 저널리즘 상을 수상한 '천사의 몫'을 다룬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3년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Proof : The Science of Booze>가 탄생하였다. 저자는 술을 만들고 마시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과학기자의 입장에서 글을 전개해간다. 술이 무엇이고 술은 왜 저마다 다른가. 그리고 술은 어떻게 만드는가.
술은 효모가 당을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면서 ATP를 생산해내는 대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을 우리는 발효(정확히는 에탄올 발효)라고 한다. 1에서 3장까지는 술이 만들어지는 것에 집중한다. 효모, 당, 발효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중요하다. 효모와 발효가 자연의 산물이라면 증류는 인간이 만들어낸 방법이다. 그리고 증류를 통해 만들어진 술을 우리는 나무통에 넣어 숙성을 한다. 4장과 5장에서는 증류와 숙성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맛과 향, 몸과 뇌, 숙취를 다루는 6에서 8장까지를 보며 우리는 술을 마시는 행위와 마신 이후의 몸의 변화를 깊게 알아간다.
모든 장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6장부터는 다른 도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밌는 얘기들이 등장한다. 그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리가 알코올을 마신 후에 일어나는 반응에 대한 연구이다. 4가지 군(위약 예상/알코올 섭취, 위약 예상/위약 섭취, 에탄올 예상/위약 섭취, 에탄올 예상/에탄올 섭취)을 통해 연구가 진행되었다. 재밌었던 것은 위약 예상/에탄올 섭취 군에서는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 조차도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통해 예상, 즉 자신이 음료를 마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자각이 에탄올 효과에서 결정 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알코올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에는 알코올의 향이나 맛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 또한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위 경우와는 반대로 즉, 에탄올 예상/위약 섭취 군에서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을 때 에탄올을 실제 섭취하지 않았음에도 술에 취한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프루프 : 술의 과학>은 술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헤처 나가는 모험과도 같다. 하지만 각 장에서 소개하는 과학적 지식과 연구사례들은 그 모험을 더욱 흥미롭게 해 주는지 어렵게 해 주는지 명확하지 않다. 각 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난 후의 필자는 술에 대해 더 잘알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책을 여러번 읽다보면 술에 대해 더 잘알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이 책에 대한 감상 역시 동일하다. 알아야 할 지식들이 너무 많다는 부담감에 그런 것일까. 술에 대한 원초적인 흥미가 떨어진듯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아마 필자의 부족한 독해력이 원인일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술에 대해 알아가야 할 방향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술에 대해 좀 더 정립된 과학적 지식을 쌓고자 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가볍게 읽기위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고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어볼 마음이라면 당연히 말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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